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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060725~0802 터키 & 그리스 가족 여행

20060730-1_트로이 (6) - 트로이 유적지 (2)


이런 사진들은 게시물을 모두 올린다는 나의 방침에 따라 올라온 것으로 실상 정상적인 여행기를 올린다면 삭제 대상이 되었을 사진이다.










복원한 성곽은 다시 보아도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성곽을 짓는다는 것은, 기술력이 부족하거나, 국력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포격전에 대비해서 짓는 것이다.


그 당시의 문명이 화약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면, 국력이 부족하던지 아니면 기술이 모자라 큰 돌로 성채를 쌓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트로이의 모습이 위 사진처럼 생겼다고는 해도 그다지 문명국가인 것같지는 않다.


하기는 미케네 문명이 청동기 문명이었으므로 군사적으로는 미숙하기 이를 데 없는 문명이었을 것이다.


그런 문명을 가진 부족들간의 전쟁을 크게 떠벌려놓은 것이 바로 호머의 서사시인 것이다.


별 볼일 없는 인간들을 부각하려니 그 당시의 장수들을 그리스 신화에나 나오는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인 존재로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유적지가 규모가 방대한 것은 단지 오랜 기간에 걸쳐 번성했던 도시국가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해본다.


















위 사진처럼 성채를 덮고 그 위에 또 성채를 쌓고 하는 식으로 성을 늘려갔을 것이다.


하나, 만일 고조선의 성채가 발굴된다면, 엄청나게 방대한 지역을 세밀한 도시계획 하에 만들어 간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도시계획은 고구려와 발해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서, 발해 오경을 건축하는 데 세밀한 도시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서 성곽을 건축했으니 오랜 세월에 걸쳐 성을 쌓고 또 쌓고 하는 트로이식의 무분별한 건축은 결코 하지를 않았다.


우리 선조들이 성을 짓는 영역은 그리스의 도시국가가 성을 짓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


우리 선조는 강을 중심으로 해서 성을 지었고, 그리스 인들은 바다를 중심으로 성을 지었으니 말이다.


그들이 육지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배를 타고 좁은 지중해를 큰 대양인 줄 알고 돌아다니던 시절, 우리 선조는 수만리를 말을 타고 횡횡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유적은 미케네 문명이 아니다.  미케네 문명에서는 대리석을 쓰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


















사실 봐도 별반 감흥이 느껴지는 곳이 아니다.
아직 발굴이 태반이나 진행중인 곳이며, 제대로 복구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