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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060725~0802 터키 & 그리스 가족 여행

20060726-1_이스탄불에서 (3)


터키란 어떻게 세워진 나라인가?

의외로 우린 부분에서 우리는 세계사 시간에 슬그머니 넘어가는 부분이라 지금와 중고등학교 시절의 교육시간을 돌이켜보면 조금 아쉽기도 하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수/당과 맞겨루던 고구려가 동맹을 맺고 있던 나라 의 하나가 바로 돌궐이다.


돌궐(突厥,)... 한자는 이렇게 어렵다.


중국의 북방 초원에 등장한 세력있으니만큼 당연히 흉노족의 후손이 맞다.


옛날. 정말 그 아득한 옛날.
우리 민족의 대이동이 벌어지기 전에는...
알타이 산맥의 골짜기에서 살아가던 그 시절...


우리 선조가 살던 옆 골짜기에는 돌궐족이 살고 또 한 옆에는 흉노가 살고...
또 옆에는 말갈족도 살았다.


다들 우랄-알타이 어계의 언어를 지녔으니 사실상 그 시절에는 같은 말을 썼으리라.
게다가 스키타이 문화도 공유하고 있으니 실상 이웃사촌 정도로 같은 핏줄의 민족이다.
다같이 몽고인이라는 뜻...


주나라 춘추전국시대부터 강성함을 떨쳤던 흉노가 한 무제에 의해 격패하고 서쪽으로 쫓겨났다.
일단 서쪽으로 이동을 시작하자 목양을 주업으로 하는 흉노는 동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말머리를 동으로 돌리게 되면 그동안 양들이 뜯어먹고 지나온 텅 빈 목초지가 기다리고 있어서 양고기가 주식인 흉노족들은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그랬던 흉노족이 서쪽으로 떠나버리자 흉노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던 돌궐족이 슬그머니 그 자리를 대신하지만 강력한 한나라의 군사력에 대응하지는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는다. 


한나라가 힘이 쇄약해지면서 돌궐도 서서히 고개를 들게 되는데, 이 것이 바로 중국사에  오호십육국이라고 나타난 북적(北狄)에 의한 중국 북방의 점령기다.


후삼국지라고 하는 일본의 작가가 쓴 소설을 보면 유연이라는 북적의 왕이 어떻게 진(晋)을 정복했는지 알 수 있다.


오호 십육국이 통일되어 남북조 시절을 거치는 동안에 돌궐은 강성함을 자랑하게 되고,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돌궐이 수나라에게 압박을 받게 된다.


이에 돌궐은 피를 같이하는 형제국가인 고구려와 동맹을 맺게 되었고,
이 동맹은 고구려가 망하는 그 날까지 결코 깨어지지 않고 지속되었다.


당나라 초기 고구려와의 동맹으로 강력한 대항을 해오던 돌궐은 당 고종에 이르러 고구려가 패망하자 당의 집중공략을 받게 되고, 기어코는 당의 분열정책에 휘말려 서쪽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흉노와 마찬가지로 돌궐 역시 유목민족이며 양을 키우던 부족이라 서쪽으로 이동을 시작하게 되자 결코 동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고 만다.


끝없는 서쪽으로의 행진 끝에 다다른 곳이 서쪽 바닷가인 아나토리아 반도, 즉 지금의 터키 지방이다.


터키는 지금도 돌궐시대의 왕을 선조로 모시고 있다.
터키의 차를 맛보고 있는 둘째.


우리가 탄 유람선의 선장.


앗 뜨거...
터키에서는 어디가나 이 홍차 한 잔 대접하는 것이 손님 접대의 시작이다.








이번에 동행하는 관광팀의 일원들.






돌궐족이 아나토리아 반도에 정착하면서 인변 거주민들을 복속시켜 지배하게 되는데, 이들을 지배하는 데 사용한 도구는 바로 종교였다.


아나토리아 반도에는 정통 회교가 아닌 약간 사이비의 회교도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주면서 새로이 정복한 영토를 다스리는 지배계급으로 삼았다.  그 덕분에 정통 회교는 이란에만 남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다른 터키에 복속되었던 나라들은 사이비 회교를 정통으로 삼게 되었다.


돌궐족은 종교의 힘을 바탕으로 주변 민족들과 큰 마찰없이 힘을 키워가는데, 그 첫 정착지가 바로 셀주크 지방이다.


터키란 단어는 투르크 즉 돌궐의 고대 중국식 발음을 영어식으로 읽은 것에 불과한데, 이게 이제는 국명이 되고 말았다.


















이 곳이 또 뭔가 유명한 전설이 남아있는 곳이다.
강을 마주하고 있는 곳에서 아프로디테 신전의 무녀와 사랑하게 된 한 그리스 귀족의 자제가 보스포러스 해협을 헤엄쳐 건너 사랑을 나누던 중 어느 날은 지쳐버려 미처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죽었다.  이를 알게되어 슬퍼한 무녀도 이 부근에서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전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이라고 한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유명한 이스탄불의 바자르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