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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2012

[A700 + 신번들] 20121219_서촌출사_네이버루믹스까페

 

 

 

 

우리 아들은 경기중학교에 보내야쥐...

 

아버님과 어머님은

 

부산중학교 가는 것이 확실하니

서울로 전학가지 말라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를 뿌리치고

 

국민학교 5학년 마치기 직전인 겨울방학때

두 쌍둥이 아들을

서울로 전학시켰습니다.

 

 

김신조가 휴전선을 넘어 청와대를 습격하던

그 해였지요.

 

 

 

 

 

 

 

 

옥인동 골목의 맨 안쪽에 있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앞길로 나오면 특무대가 있었지요

 

아버님이 출장을 가신 사이

집에는 중3 수험생 누나와

저와 쌍동이 형인 국민학교 5학년짜리

두 형제

 

 

이렇게 세 남매만이 집을 지키던 어느날 밤

 

총성이 울리고

 

 

세 남매는

한 방에 모여

무서움에 덜덜 떨던

그 날이 지나갔습니다.

 

 

골목길을 벗어나면

특무대가 있고

 

그 특무대 앞에서

무장공비 김신조가

잡혔다는.....

 

그 동네가 바로 옥인동입니다.

 

 

 

옥인동에서 약 반년을 사는 동안

아버님은 건설국에서 근무하시면서

 

누하동의 허름한 한옥을 사서

수리하였고

 

6학년 5월 경에 누하동 집으로 입주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개축한 한옥...

 

 

 

 

 

 

칠남매 중 위로 셋이 누나이고

저와 형은 쌍동이...

 

딸 셋 낳고 아들낳아서

좋아하시던 아버님은

 

쌍둥이 아들을 훌륭히 키운다고

 

경성으로 이사를 하셨는데...

 

 

 

 

 

 

 

겨울에는 덜덜 떨면서

찬바람 맞으면서

골목길을 걸어

청운국민학교로 갔지만

 

아는 친구는 하나도 없고....

 

서먹서먹한 5학년 봄방학을 맞이하였죠

 

 

간신히 새로 친구들을 사귀는가 싶었더니

6학년 여름 방학이 되기 직전

 

무시험 진학이 공표되었습니다.

 

 

 

 

 

 

 

저보다 두 학년 어린

대통령 영식 박 지만 군을

중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한

노련한 술책...

 

그 당시에는

그게 술책인 줄 몰랐습니다.


 

 

 

 

 


무시험 진학이 공포되자

공부는 집어치고 놀고 다니기

정신이 없던 6학년 2학기

 

여기 저기 지금의 서촌 일대를

쑤시고 돌아다녔지만

 

 

 

지금와서 가 보니

어릴 적 살던 동네는

너무나도 낯이 설었습니다

.

통인시장

맹아학교/농아학교

등등

 

일부 기억이 나는 곳도 있었고

 

 

 

 

사직공원처럼

변하지 않는 곳도 있었지만

 

골목길 하나 하나는

 

전혀 기억에 없는 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네요;

 

 

 

 

 

 

 

누하동 집 골목 끝에 있던 오거리 약국도

찾아볼 수가 없고

 

반대편 골목 끝에 있던 만화가게도 사라지고

 

중학교 1학년 때 빡빡깍은 머리에

기계충을 옮겨주던

효자동이발소도

보이지 않고

 

 

 

 

 

 

 

제법 기억력이 좋다고 말을 듣는

 

제가

 

생소한 동네로 느낄 만큼

서촌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동네 꼬맹이들 데리고

인왕산에 오르다가

 

갑자기

 

"탕~!!!!"

하고

 

위협공포탄을 쏘는 군인 아저씨의

협박에

 

그만 하산했던 그 길은

 

 

 

이제는 인왕산 등반로가 되었지요

 

 

 

 

 

 

기억의 저 깊은 심연 속에서

 

한 두 뿌리씩 솟구쳐 오르는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고자

 

가끔 찾아오는 서촌...

 

 

 

 

 

 

막걸리 한 잔 들이켜도 옛 친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고향 부산의 국민학교 동창들은

서울로 전학오면서

연락이 다 끊기었고...

 

 

 

 

 

5학년 당시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노회찬 의원만이

 

이름을 기억하는

유일한 벗입니다만

 

전혀 연락하지 않고 지내지요.

 

 

 

 

 

 

 

 

 

 

이런 구들장을 보면

 

누하동 집 개축하면서

 

쏟아져나오던

구들장이 생각나서

 

다시 추억에 잠기게 됩니다.

 

 

 

 

 

 

개축하면서 마루를 베니어판으로 바꾸었는데

 

원래의 마루는

 

큰 소나무를 벌목한 상태에서

기둥과 서까래를 할 목재를 베어내고 남은

한 쪽은 둥그렇고 다른 한 쪽은 편편한

 

나무 판자를 주욱 깔아서 만들었던...

 

 

어릴 때에는

새로 만든 베이어판 마루가 그렇게 좋았지만

 

지금은

원래 있던

개축 후에는 옆집과의 좁은 공간에

쌓아놓았던

그 송판조각 나무가

더 그립습니다.

 

 

 

 

 

 

 

 

 

 

 

 

그 때

그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바로 앞집인 방앗간집

 

뇌성마비 동생은

지금도 살아있는지

 

연락은 다 끊기었는데

.....

...

..

.

.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진명여고 앞길로 해서

 

청와대 앞길을 지나

 

정독도서관 자리에 버티던

경기고등학교 앞으로 해서

 

골목 골목 돌아가면

어느새 숨이 목에 차오르고

 

베트남대사관과

감사원이 보입니다.

 

 

고등학교 후문으로 등교한 날이

정문으로 등교한 날보다

더 많았지요.

 

 

청와대 홍보관을 보면서

그 때의 추억이

새록 새록

제 가슴을 적시더군요.

 

 

 

 

 

 

 

 

 

 

 

 

이제 이 길을 돌아가면

 

 

 

 

 

 

 

 

농아학교와 맹아학교가 있습니다.

 

지금도 있더군요.

 

 

그 앞에

우당기념관이 있는데

 

들어가서 살펴보고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쉽게도 우당기념관에서 찍은 사진이 없네요.

 

 

언젠가 다시 가서

우당기념관을

담아오고 싶습니다.

 

우당기념관의 모습보다는

 

우당선생의 일생과

그 분의 정신을

담아다가

 

온 세상에

 

퍼뜨리고 싶습니다.

 

 

중학교 다닐 무렵 등교길이던

 

배화여고 앞길

팔판동

사직공원을 지나

사직터널을 뚫고 가면

 

여기도 직선거리 2 km나 되는

 

서대문까지...

 

 

 

 

 

 

 

 

 

 

 

 

 

사직터널을 건너지 않고

터널 위쪽으로 나왔습니다.

 

그 당시 사직터널을 나오면

 

위 사진같은 기분이 들던

 

그 시절

 

 

 

 

 

 

 

 

이런 우중충한 분위기의 집이

 

대부분의 집이던 시절

 

 

 

 

 

 

 

 

 

그 시절을 기억하고자

우리는 렌즈를 들이댑니다.

 

 

 

 

 

 

 

 

얻는 것이 비록 추상화일지라도

 

 

 

 

 

 

 

 

우리 둘이서 이 세상 끝까지 함께 걸어가면

 

함께 살아간다면

 

 

 

 

 

 

 

 

 

 

 

 

 

 

하늘에 이르른다고 하더라도

부끄럼움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중늙은이의

넋두리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